Thursday, 10 October 2013

잔디밭과 클럽으로, 클래식의 변신은 무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BBC 프롬스. 올해로 119회째를 맞이한 영국 최대 여름 음악 축제다.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영국을 클래식으로 수놓는다. 

'프롬스'는 산책(promenade)과 콘서트(concerts)의 합성어다. 온 가족이 야외에서 소풍을 즐기며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는 자리다. 클래식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열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고안한 바이로이트 축제, 스위스의 대표적인 여름 클래식 이벤트인 루체른 페스티벌도 BBC 프롬스와 같은 대중적인 클래식 페스티벌을 표방한다. 

오페라 '파르지팔'의 흥행 성공 등 점차 클래식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야외 클래식 축제가 마련됐다. 3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성산동 월드컵공원 평화잔디광장 일대에서 6시간 가량 펼쳐진 클래식 페스티벌 '피크닉 클래식 2013 인 서울'이다.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이 자회사인 공연기획사 스페라와 주최·주관한 행사다. 연주자 위주로 이뤄진 기존의 야외 클래식 페스티벌과 달리 콘서트와 강의, 마스터클래스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포문은 정신과 의사이자 클래식 평론가인 박종호 풍월당 대표와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일종의 토크 콘서트로 열었다. 박 대표는 '함께하는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에 얽힌 이야기들을 쉽게 해석해 들려줬다. 

김주영 역시 '한 대의 작은 오케스트라, 피아노의 세계'를 주제로 호흡을 함께 했다. 특히 프랑스 영화 '아무르'(2012), '내겐 너무 예쁜 당신'(1992)에 삽입된 슈베르트 즉흥곡을 설명하며 직접 이 곡을 연주해 이해를 도왔다. 

이어진 스웨덴 팝페라가수 레나 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세계적인 첼리스트 양성원을 주축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 피아니스트 야마구치 히로아키가 뭉친 양성원 트리오, 테너 신동원·바리톤 고성현·소프라노 김은경이 뭉친 3인의 성악가는 상암벌을 클래식 음악으로 물들였다. 

저녁부터는 다소 쌀쌀해졌지만, 화창한 날씨와 넓은 잔디밭은 클래식을 즐기기에 더 없는 조건이었다. 맥주를 기울이는 것은 물론 돗자리를 깔고 누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비싼 돈을 주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록페스티벌과 달리 음식을 싸올 수 있어 '피크닉' 분위기가 도드라졌다.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은 점이 눈에 띄었다. 이 때문에 일부 어린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등 클래식을 즐기기에 다소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빈 필하모닉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티보르 코바치·첼리스트 슈테판 콘츠·클라리네티스트인 다니엘 오텐자머 등이 참여한 마스터 클래스, 악기 체험 부스 등 아이들이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부모들이 놓치기는 아까웠다. 

유니버설뮤직은 4일까지 이어지는 이 행사에 이틀간 총 1만3000명이 운집할 것이라 추산했다. 4일에는 팝페라 테너 임형주, 리코더리스트 권민석, 콰르텟X,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안동림 청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등이 출연한다. 

이날 밤 논현동 클럽 옥타곤에서는 '피크닉 클래식'과 달리 주로 젊은 세대들이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이벤트가 벌어졌다. 빈필·베를린필하모닉의 수석연주자들이 결성한 '더 필하모닉스'가 클럽 라운지에서 1시간 동안 연주를 들려줬다.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을 비롯해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번지점프를 하다' 등에 삽입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등으로 클럽에 모인 약 1000명을 열광케 했다. 독일출신 교포 2세인 DJ 겸 모델 파스칼 디오르가 이들의 공연 전과 인터미션에 더필하모닉스의 음악을 디제잉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회사원 정혜영(30)씨는 "평소 클래식을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클럽에서 편하게 접하니 흥미가 생긴다"면서 "클래식 공연장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젊음의 상징인 클럽과 교양의 상징인 클래식은 대척점에 있는 문화로 여겨진다. 2004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옐로 라운지'는 두 장르를 접목, 클래식 콘서트의 형식과 틀을 깼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5월2일 아시아 처음으로 론칭했다. 31일 주목받고 있는 신예 아코디어니스트 마티나스, 11월12일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공연으로 옐로 라운지를 이어간다. 

이처럼 대중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클래식의 변신을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14~15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조수미 파크 콘서트' 역시 대중성을 가미해 주목 받았다. 그룹 '비스트' 메인 보컬 양요섭이 출연, 청소년층도 끌어들였다. 

클래식업계 관계자는 "그간 딱딱했던 클래식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한 이벤트로 점차 바뀌고 있다"면서 "시장의 잠재성이 크게 때문에 클래식의 변신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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